석사자(石獅子)를 다시 펴내면서

관리자
2020-08-11
조회수 246

글쓴이 : 불일출판사    

작성일 :  2009-09-15 오후 12:36:45

석사자(石獅子)를 다시 펴내면서

- 석사자 개정판 발문 -



옛 사람의 말씀에 도(道)가 사람을 멀리 한 것이 아니라 사람이 도(道)를 멀리 한다고 했듯이 은사(恩師)스님께서는 우리 곁을 떠나지 않았건만, 저희들은 은사스님 가신지 15년이 되었다고 이렇게 추모하고 있으니 이 어찌 된 일일까?


지금으로부터 약 40년 전! 광양 백운산 상백운암(上白雲庵)에 주석하고 계신다는 구산(九山) 스님을 한번 찾아뵙기 위해 마음에 새기고 있을 때 뜻밖에 꿈속에서 구산 스님을 친견하고 다음과 같은 법문(法門)을 들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보리자성본청정(菩提自性本淸淨)

만고지금무증감(萬古至今無增減)

불여중생호불이(佛與衆生毫不異)

시방군생역부연(十方群生亦復然)


보리의 마음바탕 본래로 청정하여

옛이나 지금이나 더하고 덜함 없네.

부처와 모든 중생 조금도 다름없어

온 누리 뭇 생명도 이 또한 그러하네.



이 몽중법문(夢中法門)을 듣던 순간 육조(六祖) 스님의 법문이 문득 떠올랐다.

보리자성이 본래청정[菩提自性 本來淸淨]하니 단용차심하면 직요성불[但用此心 直了成佛]이라는 육조단경(六祖壇經)의 말씀이다.


이런 숙세의 지중한 법연(法緣)으로 인해 어렵게 스님을 찾아가 친견하고 시자(侍者)가 되었으며 또 스님의 뜻에 따라 이렇게 선문(禪門)에 머물고 있으니 이 어찌 다행스럽지 않으랴!


하지만 아직껏 은사 스님의 막중한 은혜에 보답치 못한 부끄럼과 아쉬움이 남아 있으니 이 또한 누구를 탓하며 누구를 원망하겠는가?


돌이켜보면 스님께서는 평생 동안 오직 수행정진에만 전력하면서도 가람수호와 포교전법에도 쉴 날이 없었으니 이는 복혜를 쌍수[福慧雙修]함이요, 또 한편으로는 불조(佛祖)의 유훈에 어긋남이 없이 여법한 수행가풍(修行家風)을 몸소 실천하면서도 세계일화(世界一花)의 정신으로 온 누리가 불국정토(佛國淨土)가 되기를 염원하였으니 이는 지혜와 자비를 쌍용[智悲雙用]함이 아니겠는가!


1969년 여름 안거 결제를 맞이하여 스님께서는 효봉(曉峰) 노스님의 유촉을 받들어 승보종찰 송광사(僧寶宗刹 松廣寺)에 조계총림(曹溪叢林)을 개설하고 초대 방장화상(方丈和尙)으로 추대되었다. 그리고 불조의 혜명[佛祖慧命]을 계승하고 인천의 사표[人天師表]가 될 수 있는 현전승보(現前僧寶)의 양성을 위한 원력으로 조계선풍(曹溪禪風)을 널리 선양하기에 여념이 없었다.


그러다가 1973년 봄, 미국 가주 카멜 근교에 한국 최초의 사원인 삼보사(三寶寺)가 건립되자 그 회향법회에 참석하신 후 뉴욕, 시카고, 로스앤젤레스 등 미 전역을 순방하고 귀국하는 길에 미국인 코쟁이 상좌 현조(昡照)를 데리고 온 것이 계기가 되어 송광사에 불일국제선원(佛日國際禪院)을 개원하게 되었다.


이는 800여 년 전 중국 금나라 천자(天子)인 담당국사(湛堂國師)가 불일보조국사(佛日普照國師)를 찾아와 송광사 삼일암(三日庵)에서 수행한 후 3일 만에 득도(得道)하고서 제9세 국사가 된 것이 불일국제선원의 효시라 할 수 있으며, 그 전통을 잇고 있는 것이 오늘날 송광사의 불일국제선원이 아닐까 생각된다.


연못을 파고 나면 자연히 고기가 모여들 듯 미국을 비롯하여 프랑스, 영국, 독일,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 등 구미 각국과 인도, 스리랑카, 싱가포르, 대만, 태국, 미얀마 등 동남아에서도 많은 남녀 젊은이들이 운집하여 시방당(十方堂)을 이루니 송광사 국제선원의 명성은 국내외에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이런 인연으로 수많은 외국인들이 찾아오고 또 외국 승려들의 부모 형제나 친지들이 송광사를 방문하여 방장스님의 법문을 청해 듣는 기회가 자연히 많아졌다.


그런가 하면 수년 간 총림 선원에서 수행 정진하다가 귀국길에 방장스님의 고구 정녕한 심지법문(心地法門)과 수시설법(隨時說法)을 다시 듣고 싶어서 자기네들이 스스로 스님의 법문을 모으고 번역하여 출간한 것이 영문판 ″NINE MOUNTAINS(九山)″이란 책이며, 이것을 다시 정리하여 간행한 것이 이 ″석사자(石獅子)″ 법어집이다.


그러니 이 석사자 법문은 외국인 제자들과 내방객들을 위하여 스님께서 생전에 손수 원고를 쓰고 노파심절로 자비심을 베푸신 수시설법이며 스님의 첫 저술이라는데 그 의미가 있지 않을까 싶다.


그 동안 이 석사자는 여러 차례 판을 거듭하면서 널리 유포되었으며 네거리의 돌사자답게 길을 잃고 헤매는 수많은 나그네들에게 올바른 길잡이가 되었으리라 의심치 않는다.


이제 다시 판형을 달리하여 새롭게 재출간하게 되었으니, 이 ″석사자(石獅子)″가 온 누리에 더 힘찬 사자후를 하게 되리라 염원하면서 그간 수고해 준 불일출판사 가족들에게 감사드린다.


원컨대 이 석사자 법어집을 보고 듣고 읽는 이마다 다 함께 자기의 본래면목인 보리자성(菩提自性)을 깨닫고 호호탕탕한 인생정로(人生正路)에 소요자재하고 수류득묘(隨流得妙)하여 삼보(三寶)의 은혜에 보답하고 한량없는 보살행화(菩薩行化)로써 뭇 중생들을 이롭게 한다면 이 어찌 즐겁고 기쁘지 않겠는가!


하늘 높고 바다 넓어 연화계(蓮華界) 펼쳐지니

꽃은 피고 새가 울어 적광토(寂光土) 이 아닌가!

산궁수진(山窮水盡) 회광처(廻光處)에 뚜렷한 보리자성

기식갈다(飢食渴茶) 곤즉면(困卽眠)이 이뭣꼬 도량일세.



불기 2543년(1999년) 기묘년 봄

미국 하와이 臥佛山下 金剛窟中 安居時

迷佐 玄虎 焚香 九拜 合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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