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조사상硏‘서장연구’발표회
- 화두는‘개인의 내면화된 의심’ -
- 공안은‘선문답의 객관적 판례’ -
◇보조사상연구원은 2월 25~26일 <대혜서장> 연구발표회를 갖고 간화선을 집중 고찰했다.
“공안(公案)과 화두(話頭)는 구별돼야 한다. 화두는 ‘개인의 내면화된 의심’이고, 깨달음을 실현하는 실천이나 공안은 선문답의 객관적 유산으로 남겨진 ‘판례’일 뿐이다.”
‘묵조선(默照禪)의 비판‘으로 널리 알려진 대혜종고(大慧宗고·1088∼1163) 선사의 간화선(看話禪)을 집중 고찰한 세미나에서 보통 같은 의미로 혼용되고 있는 ‘공안‘과 ‘화두’를 엄밀히 구별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돼 눈길을 끌었다.
‘대혜서장(大慧書狀) 연구’를 주제로 2월25∼26일 열린 보조사상연구원(이사장 현호스님) 제2차 선전연구 발표회에서 인경스님(동국대 강사)은 ‘대혜 간화선의 특질’에서 “화두는 선대(先代)의 고칙(古則)인 공안에 대한 주체적인 자기의심으로, 이 둘은 구별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인경스님은 “화두는 깨달음에 나아가기 위한 ‘방법적 의심’으로 이해돼야 한다”며 “만약 공안에 의심이 없다면 그것은 지나가는 선문답 정도로, 나와는 관계없는 이야기에 지나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기본적으로 의심은 공안이 가지는 개념적 모순이나 논리적으로 회통할 수 없는 갈등에서 비롯되는데 이 갈등구조가 개인에게 내면화되지 않는다면 수행의 한 방식으로써 간화선은 실제적인 의미가 없다는 것. 인경스님은 “대혜가 공안과 화두라는 용어를 구별하지는 않았지만 조주(趙州)의 무자(無字)를 ‘역대 조사와 더불어 함께 손을 잡고 눈썹을 맞대고 같은 눈으로 보고, 같은 귀로 듣기 위해’ 밤낮으로 탐구해야할 문제로 여겼던 것처럼 선문답으로서의 공안과 개인의 내면속에 의심으로 자리잡은 화두는 구별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또 “공안은 그 개수를 따지자면 천만 가지일 것이지만 이 모든 의심은 하나의 화두로 귀착된다”며 “결국 개인의 내면에 자리잡은 화두는 오직 한 개일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이밖에 이날 발표회에서는 △대혜의 묵조선 비판에 대하여(김호귀·동국대 강사) △선종사에서의 간화선의 위치(혜원스님·동국대 교수) △돈오점수의 수행법과 무자화두 참구법의 관계에 대한 대혜종고와 보조지눌의 견해비교(이병욱·고려대 강사)가 발표됐다.
김호귀씨는 “묵조를 향한 대혜의 비판은 지나치게 대혜 자신의 개인적인 신념에 의한 것임을 부정할 수 없다“며 “대혜의 묵조선에 대한 ‘깨달음의 무시’ 또는 ‘깨달음에 대한 착각’이라는 주관적 해석은 묵조비판에 있어 반드시 검토해야 할 문제점”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김씨는 “묵조선과 간화선의 수행의 차이는 그 방법에 있어서는 공안에 대한 전체화(全體化) 내지는 과정화(過程化), 궁극적인 목교인 깨달음에 대한 인식, 그리고 좌선에 대한 내적인 형식 등 중요한 테마가 인정되지 않으면 안된다”며 “대혜가 묵조를 겨냥한 비판도 그 근저에는 이같은 여러 요소의 차이를 인정하지 않고 간화적 방식으로 묵조를 보았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선종사에 있어 간화선이 차지하는 위치를 고찰한 혜원스님은 “대혜의 간화선은 달마의 반야주의적 대승사상에 입각한 선지(禪旨) ‘벽관(壁觀)’이 그 근저가 된다”고 주장했다. 혜원스님은 “대혜의 ‘간화선’의 주창은 ‘달마선’의 본질로 돌아가게 하려는 의도로 봐야 한다”며 “이렇게 볼 때 간화선은 선종사에 있어서 후기에 나타난 선수(禪修)였지만 새로운 분기점이 되어 중국 선종의 본질을 한층 고양시키는 역할을 하였다”고 강조했다.
이병욱씨는 대혜의 선사상과 지눌의 간화선 사상을 비교하며 “대혜의 무자화두참구법과 돈오점수 수행법은 오늘날의 일반적인 선불교 이해에서 보면 조화되기 어렵지만 돈오점수 수행과 간화문 수행은 서로 배치되는 것이 아니다”고 고찰했다. 이씨는 “대혜는 깨달음을 얻는 방법으로 무자화두참구법을 주로 말하고 있지만 방편으로 돈오점수 수행법도 제시하고 있다”며 “이 둘의 조화가 대혜의 영향을 받은 지눌 선사상의 주요 과제였다”고 밝혔다.
김정은 기자(jekim@buddhapia.co.kr)
보조사상硏‘서장연구’발표회
- 화두는‘개인의 내면화된 의심’ -
- 공안은‘선문답의 객관적 판례’ -
◇보조사상연구원은 2월 25~26일 <대혜서장> 연구발표회를 갖고 간화선을 집중 고찰했다.
“공안(公案)과 화두(話頭)는 구별돼야 한다. 화두는 ‘개인의 내면화된 의심’이고, 깨달음을 실현하는 실천이나 공안은 선문답의 객관적 유산으로 남겨진 ‘판례’일 뿐이다.”
‘묵조선(默照禪)의 비판‘으로 널리 알려진 대혜종고(大慧宗고·1088∼1163) 선사의 간화선(看話禪)을 집중 고찰한 세미나에서 보통 같은 의미로 혼용되고 있는 ‘공안‘과 ‘화두’를 엄밀히 구별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돼 눈길을 끌었다.
‘대혜서장(大慧書狀) 연구’를 주제로 2월25∼26일 열린 보조사상연구원(이사장 현호스님) 제2차 선전연구 발표회에서 인경스님(동국대 강사)은 ‘대혜 간화선의 특질’에서 “화두는 선대(先代)의 고칙(古則)인 공안에 대한 주체적인 자기의심으로, 이 둘은 구별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인경스님은 “화두는 깨달음에 나아가기 위한 ‘방법적 의심’으로 이해돼야 한다”며 “만약 공안에 의심이 없다면 그것은 지나가는 선문답 정도로, 나와는 관계없는 이야기에 지나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기본적으로 의심은 공안이 가지는 개념적 모순이나 논리적으로 회통할 수 없는 갈등에서 비롯되는데 이 갈등구조가 개인에게 내면화되지 않는다면 수행의 한 방식으로써 간화선은 실제적인 의미가 없다는 것. 인경스님은 “대혜가 공안과 화두라는 용어를 구별하지는 않았지만 조주(趙州)의 무자(無字)를 ‘역대 조사와 더불어 함께 손을 잡고 눈썹을 맞대고 같은 눈으로 보고, 같은 귀로 듣기 위해’ 밤낮으로 탐구해야할 문제로 여겼던 것처럼 선문답으로서의 공안과 개인의 내면속에 의심으로 자리잡은 화두는 구별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또 “공안은 그 개수를 따지자면 천만 가지일 것이지만 이 모든 의심은 하나의 화두로 귀착된다”며 “결국 개인의 내면에 자리잡은 화두는 오직 한 개일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이밖에 이날 발표회에서는 △대혜의 묵조선 비판에 대하여(김호귀·동국대 강사) △선종사에서의 간화선의 위치(혜원스님·동국대 교수) △돈오점수의 수행법과 무자화두 참구법의 관계에 대한 대혜종고와 보조지눌의 견해비교(이병욱·고려대 강사)가 발표됐다.
김호귀씨는 “묵조를 향한 대혜의 비판은 지나치게 대혜 자신의 개인적인 신념에 의한 것임을 부정할 수 없다“며 “대혜의 묵조선에 대한 ‘깨달음의 무시’ 또는 ‘깨달음에 대한 착각’이라는 주관적 해석은 묵조비판에 있어 반드시 검토해야 할 문제점”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김씨는 “묵조선과 간화선의 수행의 차이는 그 방법에 있어서는 공안에 대한 전체화(全體化) 내지는 과정화(過程化), 궁극적인 목교인 깨달음에 대한 인식, 그리고 좌선에 대한 내적인 형식 등 중요한 테마가 인정되지 않으면 안된다”며 “대혜가 묵조를 겨냥한 비판도 그 근저에는 이같은 여러 요소의 차이를 인정하지 않고 간화적 방식으로 묵조를 보았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선종사에 있어 간화선이 차지하는 위치를 고찰한 혜원스님은 “대혜의 간화선은 달마의 반야주의적 대승사상에 입각한 선지(禪旨) ‘벽관(壁觀)’이 그 근저가 된다”고 주장했다. 혜원스님은 “대혜의 ‘간화선’의 주창은 ‘달마선’의 본질로 돌아가게 하려는 의도로 봐야 한다”며 “이렇게 볼 때 간화선은 선종사에 있어서 후기에 나타난 선수(禪修)였지만 새로운 분기점이 되어 중국 선종의 본질을 한층 고양시키는 역할을 하였다”고 강조했다.
이병욱씨는 대혜의 선사상과 지눌의 간화선 사상을 비교하며 “대혜의 무자화두참구법과 돈오점수 수행법은 오늘날의 일반적인 선불교 이해에서 보면 조화되기 어렵지만 돈오점수 수행과 간화문 수행은 서로 배치되는 것이 아니다”고 고찰했다. 이씨는 “대혜는 깨달음을 얻는 방법으로 무자화두참구법을 주로 말하고 있지만 방편으로 돈오점수 수행법도 제시하고 있다”며 “이 둘의 조화가 대혜의 영향을 받은 지눌 선사상의 주요 과제였다”고 밝혔다.
김정은 기자(jekim@buddhapi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