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쓴이 : Koreasah
작성일 : 2017-02-21 오전 8:24:52
~ 위빠사나(Vipassana) 깨달음을 얻는 불교 수행법 ~
위빠사나는 부처님이 깨달음을 얻은 수행 방법으로, 수행이 높아져 최고의 경지에 도달하면 스스로 깨달음을 얻게 되는 방법이다. ‘위빠사나’는 산스크리트어로 ‘위(Vi)’라는 단어와 ‘빠사나(Passana)’란 두 개의 단어가 결합하여 만들어진 단어이다. 위(Vi)는 ‘모든 것’, ‘다양한’, ‘전부’란 뜻이고, 빠사나(Passana)는 ‘꿰뚫어 보다’, ‘똑바로 알다’라는 뜻으로 ‘위빠사나’란 ‘모든 것을 이해하고 꿰뚫어 본다’는 말이라고 할 수 있다.
위빠사나는 크게 두 가지 수행법이 있는데, 좌선과 경행(행선)이다. 우선 좌선은 가부좌 상태로 앉아서 호흡에 집중하는 것이다. 즉 숨을 들이쉬고 내뱉을 때 배의 움직임에 집중하는 수행인데 일어남(숨을 들이쉬어 배가 나올 때)과 사라짐(숨을 내뱉어 배가 들어갈 때)을 관찰한다. 이렇게 관찰하다 보면 온갖 잡념이 생기고 쑤셔 오는 부위에 집중한다. 잡념이나 아픔의 대상에 집중하다 보면 어느새 아픔이나 잡념이 사라진다. 이렇게 1시간 정도 좌선을 하고 다시 1시간 정도 경행(행선)을 반복한다.
경행은 좌선으로 굳어지거나 뭉쳐진 근육을 풀어 주는 수행법으로, 발바닥에 집중하는 것이다. 편하게 서서 손은 앞으로 모으거나 편하게 뒷짐을 진다. 전방을 보며 천천히 걸어가면서 발바닥의 움직임에 집중한다. 발을 들 때, ‘듦, 나아감, 놓음’ 세 단계에 집중하면서 반복적으로 수행한다.
~*~ 위빠사나(Vipassana) ~*~
현상 통찰하는 남방 수행법 불교는 개침과 닦음의 종교이다.
2500년전 부다가야의 보리수 아래서 새벽별을 보고 이룬 부처님의 큰 깨침은 불교의 처음이요 끝이다.
그 끼친 바 진리를 풀어놓은 것이 불교의 모든 것이며, 그것들을 통하여 모든 사람들이 그 깨침에 돌아가려는 것이 부처님의 가르침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깨침의 종교인 불교는 단순한 이론이나 지적인 이해가 아니라, 깨침을 향한 실천 즉, 닦음을 요청한다.
따라서 진정한 불교인은 쉼 없는 닦음을 통해 날로 새로워지지 않으면 아니된다. 불교의 닦음은 어떠한 것일까? 불교의 닦음은 본질적으로 스스로 닦는 닦음이다.
모든 사람은 스스로의 실천과 노력을 통하여 깨침에 이를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돌아가시기 직전 제자들에게
"너 자신을 등불 삼고 진리를 등불삼아 열심히 정진하라"는 부처님의 마지막 당부도 이러한 불교적 실천, 닦음의 성격을 잘 나타낸다.
이러한 불교적 닦음의 구체적 내용이 유명한 여덟 가지 바른 실천, 즉 팔정도이다.
일체의 모든 괴로움으로부터 벗어나 니르바나에 이르기 위하여 바른 견해, 바른 사유, 바른 말, 바른 행동, 바른 생활, 바른 정진, 바른 관찰, 바른 선정의 여덟 가지 실천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 여덟 가지 바른 실천이야말로 모든 불교적 실천의 원형이다.
마음 공부를 기본으로 하는 선(禪) 또한 그 연원을 이 가운데서 찾지 않으면 아니 된다.
팔정도 가운데서 특히 마음 닦는 선법의 기본이 되는 실천은 바른 관찰, 바른 선정 즉 정념(正念)과 정정(正定)의 두 가지 이다.
정정은 마음을 하나되게 하는 삼매의 훈련이며 정념은 마음을 밝게 하여 비추어 보는것이다. 즉, 지관(止觀)이라고 할 때 지(止)는 정정, 관(觀)은 정념을 가리킨다.
대승불교, 특히 중국에서 발달된 선 역시 그 뿌리를 정념과 정정의 실천에서 찾지 않으면 아니 된다. 그러한 근본불교의 실천이 발달, 변형된 것이기 때문이다.
- 위빠싸나 선의 성격-
위빠싸나 선은 어떠한 실천인가?
위빠싸나(Vipassana)란 관(觀) 밝게 본다는 뜻으로 념(念,Sati)과 통하는 말이다.
따라서 위빠싸나 선은 정념의 실천을 가르킨다.
정념은 우리 나라에서 팔정도의 다른 실천인 정사(正思)와 혼동되고 있지만,
행동하기 전의 사유를 가르키는 정사와는 전혀 다르다.
정념의 념, 즉 관은 마음이 밝게 비추어 봄을 말한다.
영어로는 mindful하다 aware한다는 상태로 표현되고 있다.
따라서 위빠싸나의 봄은 순일한 그저 봄을 가리킨다고나 할까.
이 실천법은 부처님께서 가장 강조하신 마음공부로
지금까지 남방불교의 여러 나라에 전승되고 있으며,
근래에는 미국을 위시한 서양에도 보급되어 널리 실천되고 있다.
글쓴이 : Koreasah
작성일 : 2017-02-21 오전 8:24:52
~ 위빠사나(Vipassana) 깨달음을 얻는 불교 수행법 ~
위빠사나는 부처님이 깨달음을 얻은 수행 방법으로, 수행이 높아져 최고의 경지에 도달하면 스스로 깨달음을 얻게 되는 방법이다. ‘위빠사나’는 산스크리트어로 ‘위(Vi)’라는 단어와 ‘빠사나(Passana)’란 두 개의 단어가 결합하여 만들어진 단어이다. 위(Vi)는 ‘모든 것’, ‘다양한’, ‘전부’란 뜻이고, 빠사나(Passana)는 ‘꿰뚫어 보다’, ‘똑바로 알다’라는 뜻으로 ‘위빠사나’란 ‘모든 것을 이해하고 꿰뚫어 본다’는 말이라고 할 수 있다.
위빠사나는 크게 두 가지 수행법이 있는데, 좌선과 경행(행선)이다. 우선 좌선은 가부좌 상태로 앉아서 호흡에 집중하는 것이다. 즉 숨을 들이쉬고 내뱉을 때 배의 움직임에 집중하는 수행인데 일어남(숨을 들이쉬어 배가 나올 때)과 사라짐(숨을 내뱉어 배가 들어갈 때)을 관찰한다. 이렇게 관찰하다 보면 온갖 잡념이 생기고 쑤셔 오는 부위에 집중한다. 잡념이나 아픔의 대상에 집중하다 보면 어느새 아픔이나 잡념이 사라진다. 이렇게 1시간 정도 좌선을 하고 다시 1시간 정도 경행(행선)을 반복한다.
경행은 좌선으로 굳어지거나 뭉쳐진 근육을 풀어 주는 수행법으로, 발바닥에 집중하는 것이다. 편하게 서서 손은 앞으로 모으거나 편하게 뒷짐을 진다. 전방을 보며 천천히 걸어가면서 발바닥의 움직임에 집중한다. 발을 들 때, ‘듦, 나아감, 놓음’ 세 단계에 집중하면서 반복적으로 수행한다.
~*~ 위빠사나(Vipassana) ~*~
현상 통찰하는 남방 수행법 불교는 개침과 닦음의 종교이다.
2500년전 부다가야의 보리수 아래서 새벽별을 보고 이룬 부처님의 큰 깨침은 불교의 처음이요 끝이다.
그 끼친 바 진리를 풀어놓은 것이 불교의 모든 것이며, 그것들을 통하여 모든 사람들이 그 깨침에 돌아가려는 것이 부처님의 가르침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깨침의 종교인 불교는 단순한 이론이나 지적인 이해가 아니라, 깨침을 향한 실천 즉, 닦음을 요청한다.
따라서 진정한 불교인은 쉼 없는 닦음을 통해 날로 새로워지지 않으면 아니된다. 불교의 닦음은 어떠한 것일까? 불교의 닦음은 본질적으로 스스로 닦는 닦음이다.
모든 사람은 스스로의 실천과 노력을 통하여 깨침에 이를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돌아가시기 직전 제자들에게
"너 자신을 등불 삼고 진리를 등불삼아 열심히 정진하라"는 부처님의 마지막 당부도 이러한 불교적 실천, 닦음의 성격을 잘 나타낸다.
이러한 불교적 닦음의 구체적 내용이 유명한 여덟 가지 바른 실천, 즉 팔정도이다.
일체의 모든 괴로움으로부터 벗어나 니르바나에 이르기 위하여 바른 견해, 바른 사유, 바른 말, 바른 행동, 바른 생활, 바른 정진, 바른 관찰, 바른 선정의 여덟 가지 실천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 여덟 가지 바른 실천이야말로 모든 불교적 실천의 원형이다.
마음 공부를 기본으로 하는 선(禪) 또한 그 연원을 이 가운데서 찾지 않으면 아니 된다.
팔정도 가운데서 특히 마음 닦는 선법의 기본이 되는 실천은 바른 관찰, 바른 선정 즉 정념(正念)과 정정(正定)의 두 가지 이다.
정정은 마음을 하나되게 하는 삼매의 훈련이며 정념은 마음을 밝게 하여 비추어 보는것이다. 즉, 지관(止觀)이라고 할 때 지(止)는 정정, 관(觀)은 정념을 가리킨다.
대승불교, 특히 중국에서 발달된 선 역시 그 뿌리를 정념과 정정의 실천에서 찾지 않으면 아니 된다. 그러한 근본불교의 실천이 발달, 변형된 것이기 때문이다.
- 위빠싸나 선의 성격-
위빠싸나 선은 어떠한 실천인가?
위빠싸나(Vipassana)란 관(觀) 밝게 본다는 뜻으로 념(念,Sati)과 통하는 말이다.
따라서 위빠싸나 선은 정념의 실천을 가르킨다.
정념은 우리 나라에서 팔정도의 다른 실천인 정사(正思)와 혼동되고 있지만,
행동하기 전의 사유를 가르키는 정사와는 전혀 다르다.
정념의 념, 즉 관은 마음이 밝게 비추어 봄을 말한다.
영어로는 mindful하다 aware한다는 상태로 표현되고 있다.
따라서 위빠싸나의 봄은 순일한 그저 봄을 가리킨다고나 할까.
이 실천법은 부처님께서 가장 강조하신 마음공부로
지금까지 남방불교의 여러 나라에 전승되고 있으며,
근래에는 미국을 위시한 서양에도 보급되어 널리 실천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