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修心訣] (05) 마음은 이름없는 부처 ①

관리자
2020-06-22
조회수 330


글쓴이 : 고려사    

작성일 : 2004-06-25 오전 9:18:41


【강의】


『수심결』에는 9개의 질문과 9개의 답이 있다.

지눌은 스스로 묻고 스스로 답하는 

소위 문답식 서술방법을 택하고 있다.

이는 우리의 시선을 어떤 중요한 문제에 

집중시키는 데 효과적이기 때문이다.

이 질문은 그 9개 가운데 첫번째 것으로 

″불성이 정말로 나에게도 있다면 

왜 나는 지금 볼 수가 없느냐″는 질문이다.


″마음이 부처다″ ″네게도 불성이 있다″ 

″오직 자신의 마음을 알라″는 등의 말은 

깨침을 원칙으로 흘러나오는 생생한 메세지이다.

그 말속에는 항상 눈뜬 사람의 밝음이 번득이고 있다.

그러나 깨침이 없는 범부들은 이러한 말의 생생함을 느낄 수가 없다.

눈먼 사람의 어둠이 가려있기 때문이다.

눈뜬 사람의 살아 움직이는 메세지가 이들 눈먼 사람들에게는 

그저 하나의 평면적이며 개념적인 말로 받아들여지기가 쉽다.

눈뜬 사람과 눈먼 사람, 깨친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의 

차원의 다름 때문이라고 할 것이다.

우리는 ″불성이 현재 너에게도 있다″고 말하는 사람과 

″나는 볼 수가 없다″는 사람 사이에서 그러한 차원의 다름을 볼 수 있다.

한쪽이 깨침이라는 태양같은 밝음의 세계에 있다면,

다른 한 쪽은 캄캄한 어둠의 세계에 있다.


″왜 나는 지금 볼 수가 없느냐″는 질문은 

어둠 속에 있는 눈먼 사람의 솔직한 의심이며 고백이다.

적어도 이러한 의심과 고백의 진실됨이 없이는 

눈뜬 사람과의 대화를 계속할 수 없으며,밝음의 세계를 알기 어렵다.

우리는 ″네게도 불성이 있다″는 

깜짝 놀랄 만한 말을 너무 쉽게 듣고 만다.

그저 귓가를 스쳐가거나 

아니면 희미한 개념쯤으로 받아들이고 만다.

중생의 병통이라고나 할까.

옛날 당나라의 동산 양개(洞山良价:807~869)스님은 

어릴 때 출가하여 『반야심경』을 배우고 있었다.

그런데 ″눈·귀·코·혀·몸·뜻도 없다[無眼耳鼻舌身意]″는 구절에 이르러 

갑자기 얼굴에 손을 얹고 ″나는 눈·귀·코·혀 등을 가지고 있는데 

어째서 경에는 이런 것이 없다고 합니까?″라고 스승에게 물었다고 한다.

이러한 의심이 뒷날 조동종(曹洞宗)의 종풍을 일으킬 수 있는 

원동력이 된 것이라 할 것이다.

우리는 적어도 지눌의 다음 말을 귀담아 듣기 위해서 

여기 이 질문이 다른 사람의 것이 아니라 

나의 질문, 나의 의심으로 바뀌어져야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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