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쓴이 : 불일출판사
작성일 : 2010-05-02 오후 11:39:23
불일출판사 간행, 강건기 지음
『보조국사 지눌의 생애와 사상』에 대하여

1. 집필 동기
효봉(曉峰) 스님께서는 지눌(知訥)을 배운다는 뜻으로 학눌(學訥)이라 호를 짓고 평생 보조선을 실천, 선양하셨습니다. 필자 또한 10여 년 전부터 목우학인(牧牛學人)이라 호하고 지눌사상을 공부해 오고 있습니다.
저는 박사학위 논문으로 지눌의 사상과 토마스 머튼의 사상을 비교하면서 지눌의 선사상이야말로 인류 보편의 종교체험과 일치하며 인간회복의 뛰어난 사상임을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이런 사상을 모든 사람들이 쉽게 접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지눌의 대표적인 저술인『수심결(修心訣)』을 풀어서『마음 닦는 길』(1990. 제 1회 불교출판문화상 대상 수상)이라 출간한 것도 이 때문이었습니다.
그런 뒤로 보조사상연구원의 이사장이신 현호(玄虎) 스님을 가까이에서 뵙고 보조사상을 널리 알려야 한다는 원력이 크신 것을 알았습니다. 스님께서는 보조 스님의 저술을 쉽게 풀어내도록 격려와 성원을 주셨고 그 결과로『참마음 이야기(眞心直說 강의)』,『정혜결사문 강의』도 낼 수 있었습니다.
보조사상연구원 설립 이래 보조사상에 관한 관심과 연구는 활발하여 지금까지 보조사상을 주제로 50여 편의 학위논문, 600여 편이 넘는 학술논문, 그리고 10여권의 단행본의 쓰여 졌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보조 스님의 삶과 사상을 일반 사람들이 쉽게 접할 수 있는 저술은 보기가 힘듭니다.
그래서 현호 스님께서는 보조 스님의 생애와 사상도 쉽게 모든 사람들이 읽을 수 있도록 해야 된다며 4-5년 전 필자를 이끌고 직접 전국에 있는 보조국사 유적지를 2차에 걸쳐 순례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바로 집필하지 못하다가 금년 보조국사 열반 800주년(5월 10일)을 맞으며 책을 내게 되었습니다.
2. 보조국사 지눌 및 보조사상의 역사적 위상(1장 1절, pp.19-24. 참조)
① 보조국사 지눌(普照國師 知訥, 1158-1210)은 원효(元曉)와 함께 한국불교의 가장 우뚝한 봉우리 일 뿐만 아니라 한국을 대표하는 세계적 사상가입니다. 신라의 원효가 불교내의 여러 갈래의 흐름과 쟁론을 화합시키어 회통불교의 초석을 놓았다면 지눌은 선과 교[禪敎]가 대립 갈등하는 타락한 교려불교를 바로잡아 선․교가 둘이 아닌 회통불교의 전통을 확립하였습니다.
② 그가 확립한 전통은 오늘날 까지 한국불교에 면면히 전승되고 있습니다.
오늘날 한국 불교의 총림에는 선원과 함께 강원과 율원이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으며 가르침을 통해 마음을 닦고 깨치는 수행을 하고 있습니다.
매 안거(安居) 때마다 2-3000명의 눈 푸른 납자들이 화두를 참구하고 있는데 그 화두참구의 간화선이 바로 지눌이 최초로 소개한 수행법입니다.
한국불교 강원교육의 교과과정은 지눌이 중요시 했던 과목을 중심으로 짜여 져 있으며 그의『계초심학인문』과『법집별행록절요』는 필수 과목이 되어 있습니다.
③ 그의 저술은 시공을 초월하여 많은 선지식분들의 진리의 눈을 뜨게 하고 있습니다. 근세 한국불교의 중흥조로 사라져가는 선풍을 다시 진작시킨 경허(鏡虛) 스님이 지눌의 결사정신을 이었으며 만공(滿空) 스님께서도 보조선을 크게 선양하였습니다. 역시 경허의 법을 이은 혜월(慧月)과 한암(漢岩) 스님께서는 지눌의『수심결』을 읽다가 견성했다 합니다. 또 효봉 스님께서도 꿈에 송광사 제 16국사 고봉화상으로부터『수심결』법문을 듣고효봉이란 법호를 받았으며, 경봉(鏡峰) 스님 역시『보조어록』을 읽다가 견처를 얻고 지눌을먼 스승으로 삼았다 합니다. 조계총림을 개설하고 보조선을 세계 속에 선양한 구산(九山) 스님도 광양 백운산 상백운암에서『보조어록』을 읽고 용맹정진을 하다가 오도송을 읊었다 합니다.
④ 지눌의 영향은 우리나라에 국한되지 않습니다. 유일한 필사본이 일본에 남아있는『화엄론절요』는 간행 된지 6년 만에 일본 가마꾸라 불교의 유명한 화엄승 명혜(明惠)의 저술에 인용되었으며 역시 가마꾸라의 화엄승 원종(圓宗)이 구두점을 찍으며 탐독한 것은 간행 88년 만의 일이었습니다.
지눌의 대표적 저술들은 명나라 청나라 대장경에 수록되었으며 일본의 대정신수대장경에도 수록되어 있습니다.
1983년에는 그의 어록이 하와이 대학에서 영역, 출판되어 보조사상 세계화의 기틀이 되고 있습니다.
『선학의 황금시대』란 명저를 낸 대만의 세계적 석학 오경웅(吳經熊) 선생은 지눌의 저술로부터 깊은 영향과 감동을 받았음을 한국어판 서문에서 이렇게 밝히고 있습니다.
"본인은 중국의 선불교를 연구하는 동안 한편으로는 한국의 선불교로부터 깊은 영향을 받았음을 이 자리를 빌려 밝히고자 합니다.『선학의 황금시대』를 집필하면서 본인은 특히『보조법어』와 서산대사의『선가귀감』의 도움을 많이 받았습니다.『보조법어』중에서도 특히『수심결』은 저의 선학 이해를 심화시켰으며 깊은 영향과 감명을 주었습니다." (본문 23p.)
보조사상을 주제로 50여 편의 학위논문과 600여 편이 넘는 학술논문이 쓰여 졌고 그의 사상은 불교의 울타리를 넘어 다양한 측면에서 조명되고 있습니다. 예컨대, 그의 사상은 인간학, 인간 회복학으로 조명되기도 했고, 토마스 머튼, 칼 발트의 신학, 아씨시의 프란치스코 등 기독교 사상과도 비교 되었으며 퇴계사상, 정신분석, 교육학, 사회학 등 다양한 영역과의 비교도 이루어졌습니다.
서양철학을 전공했던 고 박종홍 교수는 지눌을 이렇게 평가하고 있습니다.
만일 외국학자들이 ″너희 나라에도 철학자가 있느냐?″고 묻는다면 나는 서슴지 않고 순천 송광사에서 만년을 보내신 보조 스님을 들겠다. 나는 평생 지눌이 지은『절요』처럼 이슈가 뚜렷하고 논리가 명쾌한 철학서는 동서고금을 통틀어 따로 본적이 없다." (본문 24p.)
3. 지눌의 생애 : 정혜결사로 일관한 삶(생애 부분 및 p.159. 연보 참조)
① 그가 살았던 12-3세기 교려 불교는 정법과 멀어진 타락한 불교였습니다. 밖으로 정치적 소용돌이 속에 휩쓸려 승려의 기강이 해이해지고 안으로는 선과 교가 대립 갈등하여 서로를 ″원수처럼″ 여겼다 합니다.
그는 고려불교의 타락상을 "부처님 법을 빙자하여 나와 남을 꾸미고 이양(利養)의 길에서 허덕이며 옷과 밥만 허비하고 있다″고 통탄했습니다.
② 그는 고려불교의 현실을 직시하고 25세에 타락한 고려불교를 바로잡는 정혜결사(定慧結社)를 결의하고 33세에 정혜결사운동을 본격적으로 시작, 송광사에서 53세에 생을 마칠 때까지 정혜결사로 일관한 삶을 살았습니다. 그런 그를 우리는 ″조용한 혁신가″라 불러도 좋겠습니다.
③ 그는 고려불교가 정법과 멀어진 이유를 불자들이 가장 기본적인 마음 닦는 수심(修心)을 게을리 하기 때문이라 보았습니다. 그래서 그를 바로잡기 위해 선정과 지혜를 닦는 수심불교를 해야 된다 했습니다. 정혜결사는 실로 마음 닦는 수심결사(修心結社)라 할 수 있습니다.
④ 정혜결사를 통해 그는 왕실불교, 국가불교를 대중의 불교로, 기복․의례 불교를 수행불교로, 명예나 이익을 탐하는 불교를 수심 불교로 일대전환 시키어 정법을 바로 세웠습니다.
4. 지눌의 사상
① 지눌의 사상은 12-3세기 고려불교를 바로잡으려는 고뇌의 산물입니다. 모든 사람들이 마음 닦는 바른 길을 걸을 수 있도록 제시하기 위해 그는 많은 저술도 했습니다. 따라서 그의 사상은마음, 깨침, 닦음을 중심주제로 하고 있습니다.
② 지눌에 의하면 우리들 본래 마음은 육신 속에 있는 비좁은 바탕이 아니라 우주와 둘이 아니며 나와 남이 둘이 아닌 ″하나″인 바탕이라 합니다. 그 바탕을 텅 비었으면서 환히 밝은 바탕[空寂靈知心]이라 했고 하늘․땅을 덮는 바탕이라 했습니다. 그 본래 마음이 다름 아닌 부처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부처로 살 수 있는 능력과 소질을 갖추고 있습니다.
③ 그런데, 문제는 마음이 부처라는 사실을 모른 채 바깥 대상에만 팔려 살기 때문에 중생살이를 면치 못하고 있습니다. 이제 필요한 것은 밖으로만 치닫던 의식의 빛이 일대 방향전환을 일으켜 본바탕 마음을 보아야 합니다[一念回光見自本性]. 그것이 돈오(頓悟)며 그 때 터지는 탄성이 ″마음이 부처″입니다.
④ 돈오로 공부를 다 마친 것인가요? 지눌에 의하면 그럴 수도 있고 그렇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돈오하는 즉시 부처인 마음이 24시간 생활 속에 살려지면 더 닦을게 없습니다. 그런 경우 돈오돈수입니다. 최상의 근기는 그렇게 될 수 있다 합니다. 그러나 일반적인 경우, 그렇게 되기는 힘들다 합니다. 돈오하더라도 과거부터 익혀온 습기(習氣)가 남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 근기의 경우 점차적인 닦음으로 습기를 내려놓는 공부와 함께 이타의 보살행이 필요합니다. 그것이 점수(漸修)입니다. 그는 타락한 고려불교의 현실에서 ″최상근기가 몇이나 있을까?″ 라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돈오점수를 보편적인 길로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는 결코 돈오돈수를 무시하지 않았습니다.
⑤ 점수의 내용이 선정과 지혜를 함께 닦는 정혜쌍수이며 그와 함께 이타의 보살행을 강조하는 점도 보조선의 한 특성이라 하겠습니다. 그는 "만약 남을 이롭게 하는 행이 없다면 곧 고요함만 취하는 무리들[趣寂之徒]과 무엇이 다른가?"라 하고 있으며 "남을 제도하려 하기 때문에 먼저 선정과 지혜를 닦아야 한다" 했습니다. (본문 pp.138-141. 참조 )
⑥ 그는 혜능의 돈문(頓門)에 서면서도 점문(漸門)을 수용하고 있으며 돈오점수를 강조하면서도 돈오돈수, 화두로 바로 깨치는 경절문(徑截門)을 함께 수용하고 있습니다. 또 하근기의 경우 염불수행도 권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그의 선은 근기에 따라 다양한 길을 제시하는 회통적 수심 불교입니다. 이런 보조선의 확립으로 한국의 선은 비로소 중국선(中國禪)으로부터 벗어나 독자적 전통을 이루게 되었습니다. 이런 보조선의 전통을 목우가풍(牧牛家風)이라 부르며 이 목우가풍은 조선조까지 16국사를 배출한 송광사를 중심으로 오늘날까지 한국불교에 면면히 전승되고 있습니다.
⑦ 선과 교의 회통
선과 교가 서로 ″원수처럼″ 대하는 교려불교의 현실을 고뇌하고 선교가 둘이 아닌 전거를 찾기 위해 하가산 보문사에서 3년 동안 대장경을 열람한 끝에 마침내『화엄경』을 통해 선교가 둘이 아님을 발견, 감격의 눈물을 흘리고 "부처가 입으로 말한 것은 교요, 조사가 마음에 전한 것은 선이다."라 설파 했습니다. 이는 후에 "선은 부처님의 마음이요, 교는 부처님의 말씀"이란 말로 정형화 되었고 선교회통의 원리가 되었습니다.
그는 ″손가락″을 통해 ″달″을 직접 보듯 말씀을 통해 마음을 직접 깨치는 것을 수행의 바른 길이라 했습니다.
5. 지눌사상의 특성
① 인간 회복학의 성격이 강하게 나타납니다. 본래 부처인 마음을 회복하고 생활 속에 실현시키는 것이 수심의 전 과정이기 때문입니다. (pp.175-176. 참조)
② 회통적 성격 : 돈과 점, 선정과 지혜, 깨침과 닦음, 자리와 이타, 선과 교가 분리할 수 없는 하나를 이루고 있습니다.
③ 현실과 실천을 중시합니다. (pp.179-180. 참조)
④ 가르침을 필요로 하는 사람의 능력과 소질을 중시하는 근기설법의 성격이 강하게 나타나고 있습니다.
6. 보조사상의 현대적 의의
① 인간상실, 자기상실의 깊은 늪에 빠져 있는 현대는 그로부터 진정한 인간회복, 자기회복의 원음을 들을 수 있습니다. (p.185. 및 뒷 표지에 뺀 글 참조.)
② 외래사상, 외래문화의 무분별한 수용으로 가치관의 큰 혼돈상태에 빠져 있는 우리는 지눌로부터 외래사상 수용의 자세를 배워야 할 것입니다.
③ 한국불교는 지눌의 결사정신을 오늘에 살려야 합니다. 그러기위해 제2의 정혜결사 운동이 절실히 필요합니다. 오늘의 결사는 인류의 미래를 선도할 수 있는 한국불교의 미래상에 대한 종합적인 계획과 그 구체적 실천방법을 분명히 제시하는 대중적 결사가 되어야 합니다. 지눌의 정혜결사는 승속은 물론 삶을 인간답게 살려는 모든 사람들에게 열려있는 결사였습니다. 이런 ″함께″하는 정신은 오늘에 음미되고 살려져야 할 것입니다. (pp.190-191. 참조)
오늘 보조국사 지눌의 삶과 사상을 다시 한 번 새겨보는 것은 그의 투철한 현실인식과 결사정신, 그리고 쉼 없는 실천이 오늘 우리를 비춰보는 지혜의 거울로 다시 살아나야 되겠기 때문입니다.
불기 2554년(2010년) 5월 1일
승보도량 조계산 송광사 탑전(塔殿)에서
목우학인(牧牛學人) 강건기 합장



















[사진설명]
이번에 간행한 ″보조국사 지눌의 생애와 사상″에 수록된 조계산 송광사와
불일 보조스님께서 주석하며 수행정진하셨던 유서깊은 유적지 사진들입니다.
글쓴이 : 불일출판사
작성일 : 2010-05-02 오후 11:39:23
불일출판사 간행, 강건기 지음
『보조국사 지눌의 생애와 사상』에 대하여
1. 집필 동기
효봉(曉峰) 스님께서는 지눌(知訥)을 배운다는 뜻으로 학눌(學訥)이라 호를 짓고 평생 보조선을 실천, 선양하셨습니다. 필자 또한 10여 년 전부터 목우학인(牧牛學人)이라 호하고 지눌사상을 공부해 오고 있습니다.
저는 박사학위 논문으로 지눌의 사상과 토마스 머튼의 사상을 비교하면서 지눌의 선사상이야말로 인류 보편의 종교체험과 일치하며 인간회복의 뛰어난 사상임을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이런 사상을 모든 사람들이 쉽게 접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지눌의 대표적인 저술인『수심결(修心訣)』을 풀어서『마음 닦는 길』(1990. 제 1회 불교출판문화상 대상 수상)이라 출간한 것도 이 때문이었습니다.
그런 뒤로 보조사상연구원의 이사장이신 현호(玄虎) 스님을 가까이에서 뵙고 보조사상을 널리 알려야 한다는 원력이 크신 것을 알았습니다. 스님께서는 보조 스님의 저술을 쉽게 풀어내도록 격려와 성원을 주셨고 그 결과로『참마음 이야기(眞心直說 강의)』,『정혜결사문 강의』도 낼 수 있었습니다.
보조사상연구원 설립 이래 보조사상에 관한 관심과 연구는 활발하여 지금까지 보조사상을 주제로 50여 편의 학위논문, 600여 편이 넘는 학술논문, 그리고 10여권의 단행본의 쓰여 졌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보조 스님의 삶과 사상을 일반 사람들이 쉽게 접할 수 있는 저술은 보기가 힘듭니다.
그래서 현호 스님께서는 보조 스님의 생애와 사상도 쉽게 모든 사람들이 읽을 수 있도록 해야 된다며 4-5년 전 필자를 이끌고 직접 전국에 있는 보조국사 유적지를 2차에 걸쳐 순례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바로 집필하지 못하다가 금년 보조국사 열반 800주년(5월 10일)을 맞으며 책을 내게 되었습니다.
2. 보조국사 지눌 및 보조사상의 역사적 위상(1장 1절, pp.19-24. 참조)
① 보조국사 지눌(普照國師 知訥, 1158-1210)은 원효(元曉)와 함께 한국불교의 가장 우뚝한 봉우리 일 뿐만 아니라 한국을 대표하는 세계적 사상가입니다. 신라의 원효가 불교내의 여러 갈래의 흐름과 쟁론을 화합시키어 회통불교의 초석을 놓았다면 지눌은 선과 교[禪敎]가 대립 갈등하는 타락한 교려불교를 바로잡아 선․교가 둘이 아닌 회통불교의 전통을 확립하였습니다.
② 그가 확립한 전통은 오늘날 까지 한국불교에 면면히 전승되고 있습니다.
오늘날 한국 불교의 총림에는 선원과 함께 강원과 율원이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으며 가르침을 통해 마음을 닦고 깨치는 수행을 하고 있습니다.
매 안거(安居) 때마다 2-3000명의 눈 푸른 납자들이 화두를 참구하고 있는데 그 화두참구의 간화선이 바로 지눌이 최초로 소개한 수행법입니다.
한국불교 강원교육의 교과과정은 지눌이 중요시 했던 과목을 중심으로 짜여 져 있으며 그의『계초심학인문』과『법집별행록절요』는 필수 과목이 되어 있습니다.
③ 그의 저술은 시공을 초월하여 많은 선지식분들의 진리의 눈을 뜨게 하고 있습니다. 근세 한국불교의 중흥조로 사라져가는 선풍을 다시 진작시킨 경허(鏡虛) 스님이 지눌의 결사정신을 이었으며 만공(滿空) 스님께서도 보조선을 크게 선양하였습니다. 역시 경허의 법을 이은 혜월(慧月)과 한암(漢岩) 스님께서는 지눌의『수심결』을 읽다가 견성했다 합니다. 또 효봉 스님께서도 꿈에 송광사 제 16국사 고봉화상으로부터『수심결』법문을 듣고효봉이란 법호를 받았으며, 경봉(鏡峰) 스님 역시『보조어록』을 읽다가 견처를 얻고 지눌을먼 스승으로 삼았다 합니다. 조계총림을 개설하고 보조선을 세계 속에 선양한 구산(九山) 스님도 광양 백운산 상백운암에서『보조어록』을 읽고 용맹정진을 하다가 오도송을 읊었다 합니다.
④ 지눌의 영향은 우리나라에 국한되지 않습니다. 유일한 필사본이 일본에 남아있는『화엄론절요』는 간행 된지 6년 만에 일본 가마꾸라 불교의 유명한 화엄승 명혜(明惠)의 저술에 인용되었으며 역시 가마꾸라의 화엄승 원종(圓宗)이 구두점을 찍으며 탐독한 것은 간행 88년 만의 일이었습니다.
지눌의 대표적 저술들은 명나라 청나라 대장경에 수록되었으며 일본의 대정신수대장경에도 수록되어 있습니다.
1983년에는 그의 어록이 하와이 대학에서 영역, 출판되어 보조사상 세계화의 기틀이 되고 있습니다.
『선학의 황금시대』란 명저를 낸 대만의 세계적 석학 오경웅(吳經熊) 선생은 지눌의 저술로부터 깊은 영향과 감동을 받았음을 한국어판 서문에서 이렇게 밝히고 있습니다.
"본인은 중국의 선불교를 연구하는 동안 한편으로는 한국의 선불교로부터 깊은 영향을 받았음을 이 자리를 빌려 밝히고자 합니다.『선학의 황금시대』를 집필하면서 본인은 특히『보조법어』와 서산대사의『선가귀감』의 도움을 많이 받았습니다.『보조법어』중에서도 특히『수심결』은 저의 선학 이해를 심화시켰으며 깊은 영향과 감명을 주었습니다." (본문 23p.)
보조사상을 주제로 50여 편의 학위논문과 600여 편이 넘는 학술논문이 쓰여 졌고 그의 사상은 불교의 울타리를 넘어 다양한 측면에서 조명되고 있습니다. 예컨대, 그의 사상은 인간학, 인간 회복학으로 조명되기도 했고, 토마스 머튼, 칼 발트의 신학, 아씨시의 프란치스코 등 기독교 사상과도 비교 되었으며 퇴계사상, 정신분석, 교육학, 사회학 등 다양한 영역과의 비교도 이루어졌습니다.
서양철학을 전공했던 고 박종홍 교수는 지눌을 이렇게 평가하고 있습니다.
만일 외국학자들이 ″너희 나라에도 철학자가 있느냐?″고 묻는다면 나는 서슴지 않고 순천 송광사에서 만년을 보내신 보조 스님을 들겠다. 나는 평생 지눌이 지은『절요』처럼 이슈가 뚜렷하고 논리가 명쾌한 철학서는 동서고금을 통틀어 따로 본적이 없다." (본문 24p.)
3. 지눌의 생애 : 정혜결사로 일관한 삶(생애 부분 및 p.159. 연보 참조)
① 그가 살았던 12-3세기 교려 불교는 정법과 멀어진 타락한 불교였습니다. 밖으로 정치적 소용돌이 속에 휩쓸려 승려의 기강이 해이해지고 안으로는 선과 교가 대립 갈등하여 서로를 ″원수처럼″ 여겼다 합니다.
그는 고려불교의 타락상을 "부처님 법을 빙자하여 나와 남을 꾸미고 이양(利養)의 길에서 허덕이며 옷과 밥만 허비하고 있다″고 통탄했습니다.
② 그는 고려불교의 현실을 직시하고 25세에 타락한 고려불교를 바로잡는 정혜결사(定慧結社)를 결의하고 33세에 정혜결사운동을 본격적으로 시작, 송광사에서 53세에 생을 마칠 때까지 정혜결사로 일관한 삶을 살았습니다. 그런 그를 우리는 ″조용한 혁신가″라 불러도 좋겠습니다.
③ 그는 고려불교가 정법과 멀어진 이유를 불자들이 가장 기본적인 마음 닦는 수심(修心)을 게을리 하기 때문이라 보았습니다. 그래서 그를 바로잡기 위해 선정과 지혜를 닦는 수심불교를 해야 된다 했습니다. 정혜결사는 실로 마음 닦는 수심결사(修心結社)라 할 수 있습니다.
④ 정혜결사를 통해 그는 왕실불교, 국가불교를 대중의 불교로, 기복․의례 불교를 수행불교로, 명예나 이익을 탐하는 불교를 수심 불교로 일대전환 시키어 정법을 바로 세웠습니다.
4. 지눌의 사상
① 지눌의 사상은 12-3세기 고려불교를 바로잡으려는 고뇌의 산물입니다. 모든 사람들이 마음 닦는 바른 길을 걸을 수 있도록 제시하기 위해 그는 많은 저술도 했습니다. 따라서 그의 사상은마음, 깨침, 닦음을 중심주제로 하고 있습니다.
② 지눌에 의하면 우리들 본래 마음은 육신 속에 있는 비좁은 바탕이 아니라 우주와 둘이 아니며 나와 남이 둘이 아닌 ″하나″인 바탕이라 합니다. 그 바탕을 텅 비었으면서 환히 밝은 바탕[空寂靈知心]이라 했고 하늘․땅을 덮는 바탕이라 했습니다. 그 본래 마음이 다름 아닌 부처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부처로 살 수 있는 능력과 소질을 갖추고 있습니다.
③ 그런데, 문제는 마음이 부처라는 사실을 모른 채 바깥 대상에만 팔려 살기 때문에 중생살이를 면치 못하고 있습니다. 이제 필요한 것은 밖으로만 치닫던 의식의 빛이 일대 방향전환을 일으켜 본바탕 마음을 보아야 합니다[一念回光見自本性]. 그것이 돈오(頓悟)며 그 때 터지는 탄성이 ″마음이 부처″입니다.
④ 돈오로 공부를 다 마친 것인가요? 지눌에 의하면 그럴 수도 있고 그렇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돈오하는 즉시 부처인 마음이 24시간 생활 속에 살려지면 더 닦을게 없습니다. 그런 경우 돈오돈수입니다. 최상의 근기는 그렇게 될 수 있다 합니다. 그러나 일반적인 경우, 그렇게 되기는 힘들다 합니다. 돈오하더라도 과거부터 익혀온 습기(習氣)가 남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 근기의 경우 점차적인 닦음으로 습기를 내려놓는 공부와 함께 이타의 보살행이 필요합니다. 그것이 점수(漸修)입니다. 그는 타락한 고려불교의 현실에서 ″최상근기가 몇이나 있을까?″ 라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돈오점수를 보편적인 길로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는 결코 돈오돈수를 무시하지 않았습니다.
⑤ 점수의 내용이 선정과 지혜를 함께 닦는 정혜쌍수이며 그와 함께 이타의 보살행을 강조하는 점도 보조선의 한 특성이라 하겠습니다. 그는 "만약 남을 이롭게 하는 행이 없다면 곧 고요함만 취하는 무리들[趣寂之徒]과 무엇이 다른가?"라 하고 있으며 "남을 제도하려 하기 때문에 먼저 선정과 지혜를 닦아야 한다" 했습니다. (본문 pp.138-141. 참조 )
⑥ 그는 혜능의 돈문(頓門)에 서면서도 점문(漸門)을 수용하고 있으며 돈오점수를 강조하면서도 돈오돈수, 화두로 바로 깨치는 경절문(徑截門)을 함께 수용하고 있습니다. 또 하근기의 경우 염불수행도 권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그의 선은 근기에 따라 다양한 길을 제시하는 회통적 수심 불교입니다. 이런 보조선의 확립으로 한국의 선은 비로소 중국선(中國禪)으로부터 벗어나 독자적 전통을 이루게 되었습니다. 이런 보조선의 전통을 목우가풍(牧牛家風)이라 부르며 이 목우가풍은 조선조까지 16국사를 배출한 송광사를 중심으로 오늘날까지 한국불교에 면면히 전승되고 있습니다.
⑦ 선과 교의 회통
선과 교가 서로 ″원수처럼″ 대하는 교려불교의 현실을 고뇌하고 선교가 둘이 아닌 전거를 찾기 위해 하가산 보문사에서 3년 동안 대장경을 열람한 끝에 마침내『화엄경』을 통해 선교가 둘이 아님을 발견, 감격의 눈물을 흘리고 "부처가 입으로 말한 것은 교요, 조사가 마음에 전한 것은 선이다."라 설파 했습니다. 이는 후에 "선은 부처님의 마음이요, 교는 부처님의 말씀"이란 말로 정형화 되었고 선교회통의 원리가 되었습니다.
그는 ″손가락″을 통해 ″달″을 직접 보듯 말씀을 통해 마음을 직접 깨치는 것을 수행의 바른 길이라 했습니다.
5. 지눌사상의 특성
① 인간 회복학의 성격이 강하게 나타납니다. 본래 부처인 마음을 회복하고 생활 속에 실현시키는 것이 수심의 전 과정이기 때문입니다. (pp.175-176. 참조)
② 회통적 성격 : 돈과 점, 선정과 지혜, 깨침과 닦음, 자리와 이타, 선과 교가 분리할 수 없는 하나를 이루고 있습니다.
③ 현실과 실천을 중시합니다. (pp.179-180. 참조)
④ 가르침을 필요로 하는 사람의 능력과 소질을 중시하는 근기설법의 성격이 강하게 나타나고 있습니다.
6. 보조사상의 현대적 의의
① 인간상실, 자기상실의 깊은 늪에 빠져 있는 현대는 그로부터 진정한 인간회복, 자기회복의 원음을 들을 수 있습니다. (p.185. 및 뒷 표지에 뺀 글 참조.)
② 외래사상, 외래문화의 무분별한 수용으로 가치관의 큰 혼돈상태에 빠져 있는 우리는 지눌로부터 외래사상 수용의 자세를 배워야 할 것입니다.
③ 한국불교는 지눌의 결사정신을 오늘에 살려야 합니다. 그러기위해 제2의 정혜결사 운동이 절실히 필요합니다. 오늘의 결사는 인류의 미래를 선도할 수 있는 한국불교의 미래상에 대한 종합적인 계획과 그 구체적 실천방법을 분명히 제시하는 대중적 결사가 되어야 합니다. 지눌의 정혜결사는 승속은 물론 삶을 인간답게 살려는 모든 사람들에게 열려있는 결사였습니다. 이런 ″함께″하는 정신은 오늘에 음미되고 살려져야 할 것입니다. (pp.190-191. 참조)
오늘 보조국사 지눌의 삶과 사상을 다시 한 번 새겨보는 것은 그의 투철한 현실인식과 결사정신, 그리고 쉼 없는 실천이 오늘 우리를 비춰보는 지혜의 거울로 다시 살아나야 되겠기 때문입니다.
불기 2554년(2010년) 5월 1일
승보도량 조계산 송광사 탑전(塔殿)에서
목우학인(牧牛學人) 강건기 합장
[사진설명]
이번에 간행한 ″보조국사 지눌의 생애와 사상″에 수록된 조계산 송광사와
불일 보조스님께서 주석하며 수행정진하셨던 유서깊은 유적지 사진들입니다.